‘미국판 황우석’… 그 허상의 포장 벗겨내다[OTT 언박싱]

업데이트 2022-05-20 02:38
입력 2022-05-19 17:46

전 세계 경악시킨 실화 두 건

디즈니+ 오리지널 ‘드롭아웃’
피 한 방울로 240개 질병 판별
테라노스 CEO 실체 없는 현혹

피콕 오리지널 ‘닥터 데스’
성공에 조급해 환자 33명 사상
악마 의사 재개업 허용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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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드롭아웃’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 엘리자베스 홈스의 실화를 다뤘다. 디즈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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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좋은 하눌타리’라는 말이 있다. 보기만 좋았지 아무 실속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에 빗대는 표현이다. 완벽할 순 없지만 전문 분야에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땀으로 명예를 얻는 게 모름지기 삶이 지녀야 할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 자신을 포장하는 걸 넘어서 흉악한 행위로 전 세계를 경악시킨 두 사람이 있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롭아웃’(8부작)과 웨이브가 국내에 소개한 피콕 오리지널 ‘닥터 데스’(8부작)는 실화를 바탕으로 촉망받던 두 인재가 어떻게 자신과 타인을 망가뜨렸는지 보여 주는 작품이다.

‘드롭아웃’은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인 바이오벤처 테라노스의 최고경영자(CEO) 엘리자베스 홈스의 실화를 담았다. 그녀는 피 한 방울로 240개 이상의 질병을 판별할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템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해 10억 달러의 투자금을 받았다.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미국을 이끌어 갈 젊은 인재로 추앙받았으나 실상은 거짓투성이였다. 조작한 결과를 바탕으로 엉터리 시제품을 투자자들에게 소개했고 거짓말을 반복하며 실체가 없는 기술을 시장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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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33건의 의료사고를 일으킨 미국 신경외과의 크리스토퍼 던치의 실화를 그린 피콕 오리지널 ‘닥터 데스’의 한 장면. 국내에서는 웨이브를 통해 독점 공개됐다. 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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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데스’는 악명 높은 신경외과 의사 크리스토퍼 던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두 병원에서 33명의 환자를 숨지게 하거나 심각한 신체 훼손을 안겼다. 이 사실은 다른 의사 로버트 핸더슨이 수술 후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재수술을 맡으며 드러난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텍사스의학위원회는 던치의 의사면허 박탈을 불허했다. 살인을 저지르는 의사는 다시 개업을 준비하며 환자를 모으기 시작한다.

홈스와 던치 사이에는 무수한 공통점이 있다.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있고 재능에 있어 부모와 교수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점은 뚜렷한 목표를 지닌 두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든 요소다. 홈스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고 싶어 했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이를 실현시켜 줄 것이라 믿었다. 던치는 외과의로 성공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스스로 개발한 수술법에 자부심을 지녔다. 이런 자아도취는 미래를 영화처럼 그리게 만든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정의하며 인내를 거부한다. 배울 것이 없다며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한 홈스는 주변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설립한 지 10년 이하의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회사를 키워 내지만 그 근저는 사기와 권모술수로 얼룩져 있다. 신화 속 동물 유니콘처럼 존재하지 않는 환상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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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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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치 역시 자신에 대한 확신과 성공에 대한 조급함으로 인고의 시간을 지운다.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서는 3~5년 동안 조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스스로를 과대 포장한다. 또 의료계에서 명성이 높은 교수의 추천장과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경력이 있다면 어디서든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유튜브 홍보에 열을 올리고 돈으로 수상 실적을 만들며 대중을 현혹시킨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 높은 학력을 바탕으로 그들이 자극한 건 기성세대의 노쇠함이다. 성공을 위한 단계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편협한 사고로 규정한다. 여기에는 미국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작용한다. 홈스의 아이디어는 높은 의료비로 고통을 받는 미국인들에게 희망처럼 다가온다. 외과의 부족 현상은 던치가 다수의 의료 사고에도 생존을 이어 가는 배경이 된다.

‘허울좋은 도둑놈’인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의 전형을 보인다. 허상을 좇다 보니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이들조차 도구처럼 이용한다. 잃어버린 내실을 타인의 고통으로 채우고 그 피로 모래성을 굳히는 데 집중한다. 우리는 상자의 크기와 포장지의 재질만 보고 그 선물이 어떤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허울이란 포장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대가 상처로 바뀌는 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모두 15세 이상 시청가.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2022-05-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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