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수정 2017-09-29 00:08
입력 2017-09-28 17:48
동자승 섬김, 그 절대적 신뢰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언어철학자가 있다. 그의 철학 전반은 잘 몰라도 그가 남긴 명제는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관계를 담은 그림이 곧 언어’라는 요지를 담은 저서 ‘논리-철학논고’를 이렇게 끝낸다.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종교 등의 테마였다. 그렇지만 비트겐슈타인이 형이상학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같은 책에서 그는 이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신비한 뭔가가 있고, 그것은 스스로 드러난다고 쓰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보이고 느껴지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도 그렇게 한다.그들은 사람과 사람이 절대적 신뢰로 맺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수히 증명해 낸다. 예컨대 앙뚜와 우르갼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스승님과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린포체님을 돕는 것이 저의 삶이랍니다.” “스승님과 함께라면 항상 좋았어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모셔야겠네요.” 우르갼은 앙뚜를 린포체로, 앙뚜는 우르갼을 스승으로 받든다. 이를 단지 신앙의 힘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앙뚜가 린포체가 아니었다 해도 두 사람은 지금과 같은 믿음의 온기를 주고받았으리라. 앙뚜와 우르갼이 서로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보이고 느껴져서다. 우리는 믿음의 온기에 대해 말할 수 있다. 27일 개봉. 전체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2017-09-29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