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졌다!” 무슨 뜻이냐고? 2010년 연말 가족영화 ‘라스트 갓파더’를 통해 또다시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심형래(52)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졌다는 얘기다. 감독으로서 심형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천재다’와 ‘과대포장이다’의 극과극을 오가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만은 꼭 그를 속속들이 파헤쳐 명쾌한 결론을 내려보고 싶었다. 심형래의 분위기에 말리지 않기 위해 바쁘다는 후배 기자까지 동행했으나 웬걸. 결국 그가 이겼다. 그는 줄기차게 하고싶은 얘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중 98%는 영화 얘기였다. ‘감독 심형래’에 대한 깔끔한 결론은 또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지만 한가지 사실은 확실했다. ‘바보영구’는 2010년 연말에도 여전히 ‘영화에 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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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에서)지구도 많이 지키고 귀신도 다 잡았는데 왜 내 은공을 모르지?
‘미치다’‘빠지다’. 이런 단어들 외에는 ‘감독 심형래’를 표현할 말이 없다. 평소에는 두문불출. 좀처럼 TV에 얼굴을 비치지 않다가 영화 개봉만 했다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개그맨 심형래로 돌아와 대중을 웃긴다. ‘바보영구’와 ‘감독 심형래’는 그래서 동전의 양면 같다.
“맨땅에 헤딩하듯 영화를 시작했고. 꾸준히 제작하고 있죠. 늘 논란도 많았잖습니까. 하지만 제가 뭘하는지 그 뜻을 알면 그렇게 말 못할 걸요. 내가 그동안 영화에서 지구도 많이 지키고 전세계 귀신도 다 잡았는데… 왜 내 은공을 왜 모르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지구에서 잘 살고있는 것도 다 영구 덕분인데. 하하.”
86년 1탄이 시작된 영화 ‘우뢰매’시리즈 주연으로 ‘열연’하던 그는 감독으로 변신해 94년 ‘티라노의 발톱’. 99년 ‘용가리’로 점점 사이즈를 키우더니 2007년에는 블록버스터 ‘디 워’로 824만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 들고온 ‘라스트 갓 파더’는 마피아의 대부인 아버지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를 찾아 뉴욕에 왔다 조직의 후계자가 돼 마피아 수업을 받게 되는 영구(심형래)가 벌이는 코미디로 가족관객을 겨냥했다.
마주앉은 그는 쉴새없이 영화 얘기를 쏟아냈다. “‘디 워’에서 가장 높이 살 수 있는게 우리 기술 즉 컴퓨터그래픽이었다면.‘라스트 갓 파더’는 한국의 영구가 할리우드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거죠. 외국사람들도 처음엔 제가 좀 이상해보인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더니 혼랍스럽다고 하던데요? 배우들과 너무 잘 어울려서라나요.”
방향을 바꿔 근황이나 ‘인간 심형래’의 일상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다. “에이~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영화 생각외에 뭐 다른게 있었을까. 모든 것 다 버렸어요. 그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요. 할리우드 장벽을 넘어야하는데 사생활은 당연히 버릴 수 밖에 없죠. 놀 것 다 놀고 어떻게 해!”
심형래는 최근 지상파 방송 3사의 예능을 ‘접수’했다. SBS‘일요일이 좋다-런닝맨’.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 MBC‘황금어장 - 라디오스타’ 등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그가 나와 귀환을 알렸다. 특유의 “띠~리리리리~”“영구없다”를 연발하며 슬랩스틱 코미디의 진수를 보인 그는 “단발이지만 내년 설날(구정)에는 심형래쇼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중년 아주머니께서 ‘TV에 좀 나와요. 요즘 볼 게 없어’라고 하시더군요. 후배들이 못한다는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보고 웃을 수 있는게 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제작에 바쁘지만. 한편 추억의 영구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눌한 말투와 바보스러운 표정연기는 심형래의 트레이드 마크. 이런 특기를 새 영화에 고스란히 옮겼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TV속 영구의 또 다른 진면목(?)을 보이고 싶은 욕심이 크다. 대중에게 각인된 영구의 이미지가 변하지 않듯.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그의 열정 역시 변함이 없었다.
“좀 달라진 면도 있죠. 요즘 예능과 과거의 코미디가 너무 다르니까요. 예전에는 방송을 7분 해도 다 짜놓고 했는데. 요즘은 7~8시간을 애드리브로 하더군요. 나이 들어도 트렌드에 맞춰가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사실 난 요즘 트렌드가 뭔지 모르겠어요. 미스터 빈도 그대로 계속 하잖아요.하하. 슬랩스틱은 철저한 약속이에요. 그건 음악으로 치면 오케스트라고. 전체가 맞아야만 하는데 그렇게 맞춰주는 사람 이제 별로 없죠. 이게 좀 아쉬운 점입니다.”
◇감독 심형래 알리기? 무슨 소리. 원더걸스도 알리고 대한민국도 알려야지!
심형래는 그동안 “내 영화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싶다”고 강조해왔다. ‘디워’의 말미에는 영화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애국가가 나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라스트 갓파더’의 지향점도 일맥상통한다. “전세계 공용어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한국에서도 훌륭하게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디워’에 이어 ‘라스트 갓 파더’ 역시 내년 미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문화를 통해 알리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에 ‘원더걸스’도 나오는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미국에서)고생하고 있는데. 영화도 하면 얼마나 좋아요. 감독 심형래도 알릴수 있지만. 따뜻한 가족애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소개할 수 있고요.”
2010년도 영화 작업으로 한 해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으니 정작 인간 심형래는 외로울 것 같았다. “누군가는 제 눈동자가 슬퍼보인다고 해요. 남을 웃기고 울리는 작업은 그만큼 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하잖아요. 새해에는 ‘디워2’와 함께 1960년대 정서를 반영한 애니메이션 ‘추억의 붕어빵’ 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따뜻했던 추억이 사라지는게 안타까워서요. 잔잔하지만 여운이 남는. 그리고 감동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제 모습 보면서 모두들 ‘심형래도 잘 사는데.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구 심형래’의 도전은 계속 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