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어도 눈물이… ’ 말년이 불우한 희극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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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0-02-24 11:36
입력 2010-02-24 00:00
조용필이 부른 ‘그 겨울의 찻집’의 노랫말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바로 희극인의 굴곡많은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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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간의 투병 생활끝에 지난 23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배삼룡을 비롯해 슬랩스틱 코미디 전문 희극인들일수록 유독 말년이 불우해 애처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희극지왕’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눈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전성기였던 지난 1950년대 ‘매카시 광풍’에 휘말리면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모던타임스’ 등에서 드러났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때문이었다. 불운은 죽고 나서도 계속됐다. 사망 이듬해인 1978년 도굴범들이 돈을 노리고 스위스의 묘역을 파헤쳤다. 유골은 사건 발생 석 달여만에 제네바 호수 인근의 한 풀밭에서 발견됐고. 이후 사건 재발 방지 차원에서 묘역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뒤덮였다.

채플린과 더불어 할리우드 슬랩스틱 코미디의 양대 ‘원조’로 높이 평가받는 ‘제너럴’의 버스터 키톤 역시 쓸쓸한 노후를 보냈다. 무표정한 얼굴과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 액션 연기로 청룽(성룡) 등 후배 연기자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그는 193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인 MGM과 송사에 휘말려 10여년간 타의에 의해 작품 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이후 무일푼으로 전락해 19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싸구려 코미디 영화의 단역을 전전해야만 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배삼룡 구봉서 등과 함께 1960~1970년대 ‘삼두마차’ 체제를 형성했던 ‘땅딸이’ 이기동 또한 말년이 안 좋았다. ‘몸 개그’는 물론이고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등의 유행어로도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이기동은 1980년대 초반 음료 사업 실패와 신군부의 박해로 간 질환에 걸려 1993년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편.배삼룡 측은 지난해 1억3000여만원의 입원비 및 진료비를 지급하지 못해 병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돈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유족은 장례비 문제까지 겹쳐 이중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준기자 whe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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