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多樂房] ‘와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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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4-06-18 01:18
입력 2014-06-18 00:00

열살 소녀는 자전거를 타고 싶었고 세상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는데…

‘와즈다’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사우디아라비아 소녀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작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삶을 바꾼 ‘와즈다’에 대한 영화적 경험은 한마디로 ‘놀라움’이다. ‘와즈다’를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들은 적어도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 영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통제된 삶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있다. 이슬람교 율법으로 인해 중동지역 여성들이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열 살 소녀의 욕망과 그것을 억누르는 교육 현실을 이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영화는 없었다. 남성들의 이목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차단시켜야 하는 불편한 일상, 그것을 정숙한 여성의 미덕으로 세뇌시키는 여학교의 보수적 교육 등은 아직 유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머리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유독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폭력적 금기들-얼굴 노출, 여행, 운전, 투표 등-은 ‘문화’나 ‘가치관’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에 분명 벅차다. 이 영화는 이러한 금기들에 순응하지 못하는 말괄량이 소녀 ‘와즈다’와 그녀의 엄마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애환을 잘 표현해 냈다.

그런데 ‘와즈다’의 진짜 비범함은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기성세대 혹은 기존 가치관에 한순간도 무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극단적인 표현이나 상황 하나 없이 착하기만 한데도 충분히 강렬하고 감동적이다. 사회 비판이나 고발보다는 희망적 결말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 작은 변화는 영화 속 와즈다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돼 영화 개봉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실로 퍼져나간다.

두 번째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이토록 탄탄한 작품이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장편 영화일 뿐 아니라 ‘최초의 여성 감독이 만든 처녀작’이라는 점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복선(複線)으로 진행되다 한 번씩 맞물리는 내러티브의 치밀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카메라는 무심한 듯 정교하게 현실의 단면들을 포착해 낸다. 일례로 영화의 도입부에서 와즈다의 등굣길에 여기저기 파헤쳐진 공사장의 모습, 모래바람에 휘날리는 와즈다의 아바야(얼굴을 가리는 검은색 스카프) 등은 급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와즈다 모녀의 갈등과 화합을 시각화해 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이 영화가 ‘최초’라니, 감탄스러우면서도 한편 서글픈 이유는 뭘까.

일찍이 레닌은 영화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의 목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예술의 대중선동이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매체 인식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가 영화의 사회적 파급력을 간파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일어나고 있다. ‘와즈다’ 개봉 이후 자전거를 타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변화의 물결이 일기를, 그 가운데 영화가 일임을 담당해 주기를 소원한다. 19일 개봉. 전체 관람가.

영화 평론가
2014-06-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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